사회가 만든 천사와 악마, 친절한 금자씨

2020. 2. 10. 00:53Daily Pong/무비퐁

*본 포스팅에서의 회개와 구원은 종교적 의미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입니다.

 

 

 

 

누구에게 마녀로 불렸던 금자씨는 누구에게는 천사였고, 
천사로 불렸던 금자씨는 결국 천사에게 구원받지 못하였다.

 

 

 

 

 


 

 

 

 

선과 악, 그리고 도덕

선은 악을 이기는가??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

악은 최고의 선이 될 수 있다.

친절한 금자씨는 옥내에서 누구보다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녀는 남을 구원토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구원받지 못했고,

초를 끌 수 없었다. 

 

 

 


 

 

인간의 이중성

친절한 금자씨는 마녀를 죽인 후 마녀로 불리곤했다.

다시,

친절한 금자씨는 사람을 죽였음에도 친절한 금자씨로 불린다는 말이다.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인해 좋아하는,

두려운 살인자지만 정의롭다며 고마워하는 제3자.

모두가 범죄자인 감옥 내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기준에 맞는 잣대를,

사회의 디폴트가 되어버린 잣대를 들이밀곤한다.

금자씨 자체부터 시작하여 그상황 모두,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하고있다.

 

정말 잔인하고도 잔인한 사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이해를 하게되는 나의 모습까지도.

 

 

 


 

 

구원

금자씨는 천사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사회에 나와서는 죄인이 아닌 사람들(피해자)을 구원해주려했고,

감내에서는 범죄자들을 구원토록 도와주었지만 결국 자신은 구원받지못했다.

특히나 마지막에 첫번째 피해자인 남자아이가 20대성인이 되어

담배를 피우며 금자씨에게 재갈을 물리는 모습은

우리에게 복수와 구원과 용서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복수는 최대의 노력일 수 있지만, 그에 그칠 뿐 구원으로가는길은 아니라는것이다. 

 

 

 


 

복수

복수, 그것은 과연 선과악의 어느 경계에 있는것인가.

모든 사람의 심판의 기준은 다르지않는가.

모든 사람은 죄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있다.

하지만 죄인이 아닌 사람이 덜 잔인하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복수와 속죄는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것인가,

평행선상에 있는 두 영역을 멀리서, 하나의 관계로 봐왔던 것은 아닐까

 

 

 


 

색과 영화

이 영화를 초반 10분동안 이미 별점 4개를 주고 보기시작했다.

정말 미장센의 끝판왕이자 느와르물의 표준이라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은 항상 연출부터 색감, 구도를 섬세하게 신경쓰는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는 색이 특히나 너무 좋았다. 

 

감독은 새하얀 백색과, 흑색, 그리고 검붉은색감을 사용하여 관객을 가지고놀았다.

새하얀 두부와 눈은 순결함,

그리고 금자씨의 눈화장과 피의색은 극적인 복수를,

흑색은 인간의 냉혈을 표현하는듯 했다. 

 

특히나 감옥에서는 어두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부시다.

이는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친절한’ 선의 존재 ‘마녀’ 금자씨의 영광을 위한 과정이었기에 그렇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 마녀로 불렸던 금자씨는 누구에게는 천사였고, 
천사로 불렸던 금자씨는 결국 천사에게 구원받지 못하였다.